[이데일리 윤종성 기자] 삼성전자가 다시 '원톱'으로 바뀌었다. 삼성전자의 한 축을 담당하던 최지성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그룹 미래전략실장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삼성전자는 권오현 부회장 단독 체제가 됐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사업만을 챙겨온 권 부회장은 최대 고객사인 애플과 돈독한 관계를 쌓아올 수 있었다. 세트부문은 최지성 부회장이 전담했다. 최 부회장이 애플과 치열한 특허소송전을 펴면서도 권 부회장은 "그건 세트 쪽 일"이라며 애플을 설득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권 부회장이 삼성전자 최고경영자(CEO)에 올랐다.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도 새 국면에 접어들 가능성이 높아졌다.
삼성전자(005930)는 지난 8일 이사회를 열고, 권오현 부회장을 대표이사로 신규 선임했다고 밝혔다. 건강상의 이유로 사의를 표명한 김순택 부회장 대신, 최지성 부회장을 삼성 미래전략실장으로 발령낸 지 하루 만이다.
삼성전자는 "당분간 추가 인사 및 조직개편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최 부회장이 맡았던 세트부문장을 곧바로 선임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권 부회장은 부품사업과 함께 휴대폰·TV 등 세트사업까지 챙기는 삼성전자의 `원톱` 자리에 앉게 됐다.
권 부회장이 세트사업까지 챙기게 되자, 업계에선 1년여 동안 평행선을 달려온 삼성과 애플의 소송전에도 새로운 기류가 형성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는 그 동안 애플과의 소송전에서 세트와 부품이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해 왔다. 최 부회장이 애플과 소송전을 진행하면서 `강성 발언`을 쏟아내는 와중에도 권 부회장은 "애플과의 관계는 변함없을 것"이라며 파트너십을 강조하는 식이었다.
이는 삼성전자가 세트부문과 부품부문에 각 사업을 총괄하는 부회장을 따로 두면서 이른바 `차이니즈 월(Chinese wall, 내부거래의 정보교환을 철저히 금지하는 정보방화벽)`을 세웠기에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두 명의 부회장을 둔 삼성전자는 애플 등 주요 고객사들에게 세트와 부품이 개별적으로 운영되는 두 개의 별개 회사라며,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삼성은 `투 트랙 전략`으로 치열한 특허 소송전 속에서도 애플이라는 최대 고객을 놓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권 부회장 `원톱 체제`를 꾸리게 된 삼성전자가 애플을 상대로 그대로 투 트랙 전략을 고수하기는 힘들 것으로 보인다. 가뜩이나 삼성은 애플 등 주요 고객사들로부터 여전히 자사의 영업기밀이 세트부문으로 흘러 들어가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부품부문장이 회사의 CEO를 맡고 있는 한, 애플과의 소송전을 계속 끌고 갈 명분이 약해졌다는 게 업계의 중론이다.
다만 권 부회장은 당분간 부품사업에 집중하고, 세트사업은 윤부근 사장과 신종균 사장이 이끌어 가게 된다. 따라서 권 부회장의 CEO 선임으로 당장 삼성전자가 애플과의 소송 전략을 바꾸지는 않을 가능성은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플의 CEO가 스티브잡스에서 팀 쿡으로 바뀌었을 때에도 소송에 영향을 미치지는 않았다"면서 "CEO 교체로 인해 애플과의 소송전에서 우리의 입장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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