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배낭여행] 별 보러 갔다 맞닥뜨린 곰? 총악수의 아찔한 1박2일

트레킹하러 갔다가 한국인 만나서 송어 포식
열심히 놀아줬던 산골아이들의 반전
별 보려다 곰과 추위에 목숨 잃을 뻔
  • 등록 2019-08-04 오전 12:15:24

    수정 2019-08-04 오전 12:15:24

키르기스스탄(Kyrgyzstan)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총악수 계곡(Chong Ak Suu Valley)’은 사실 별 기대가 없던 곳이었다. 여행자가 많이 찾는 황금온천 ‘알틴 아라샨(Altyn Arashan)’이나 ‘송쿨 호수(Song Kul Lake)’는 정보나 사진이 많았지만, 총악수는 인기만큼이나 정보도 상대적으로 빈약했던 탓이다. 때문에 큰 기대 없이, 그저 알틴 아라샨 가는 길에 있으니 한번 들러볼 만한 곳으로 생각했었다.

역시 사람 일은 겪어봐야 아는 것 같다. 3주 간 키르기스스탄을 여행하면서 총악수처럼 1박2일 동안 그렇게 다채로운 일을 경험한 곳은 없었다. 좋은 일, 안 좋은 일 가리지 않고 말이다. 시작부터 끝까지 예사롭지 않았던 총악수에서의 이틀. 오늘은 그 기억을 소개해본다.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풀과 나무가 우거진 총악수 계곡. 이곳에서의 1박2일은 상당히 알차고 기묘했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한국분이세요?” 한마디에 따라온 행운

아프리카 여행 땐 두 달 동안 딱 3번 한국인을 봤었다. 중앙아시아 역시 한국인에게 인기도 없고, 인지도 있는 여행지도 아니니까 한국인 보기가 힘들 줄 알았다. 그런데 키르기스스탄 총악수 계곡에서 덜컥, 한국인을 만나버렸다.

발단은 이랬다. 키르기스스탄에 같이 간 동생이랑 총악수 계곡 트레킹을 하고 있었다. 계곡 입구에서부터 주변 풍경을 카메라에 담으면서 천천히 걷고 있는데 SUV차량 한 대가 옆을 지나서 올라갔다. 차를 힐끗 보니 동양인이 타고 있는 것 같았는데 어느 나라 사람인지는 잘 알 수가 없었다. 그런데 차가 저 앞에서 갑자기 멈췄다. ‘뭐지?’하면서 그쪽으로 갔더니 창문이 내려가면서 “한국분이세요?”라는 말이 건너왔다. 한국인 아저씨 두 분이 차에 타고 있었다. ‘엥?’ 상상도 못한 한국말에 두 귀를 의심했다. 한국인이 신기한 건 아저씨들도 마찬가지인 듯했다. 짧은 대화를 주고받은 뒤 조심히 잘 여행하라는 말을 남기고 차는 다시 산길을 올라갔다. 우리 빼고 한국인 안 올 것 같은 키르기스스탄에서 한국 아저씨들을 만나다니, 정말 신기한 경험이라고 생각하면서 다시 걸음을 계속했다.

10분쯤 걸었을까. 아까 그 차가 다시 내려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우리 옆에 멈추더니 또 창문이 내려갔다. 한국인 아저씨가 ‘밥 먹을 건데 생각이 나서 데리러 왔다’고 말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인가 생각하면서 일단 차에 올라탔다. 자리가 불편하진 않을까, 시간이 많이 걸리진 않을까 걱정이 든 건 사실이지만 앞으로 여행하면서 이런 기회가 다신 없을 것 같기도 했다.

송어구이와 양고기 샤슬릭. 중앙아시아 여행이 끝날 때까지 이 정도 퀄리티의 음식은 다시 먹지 못했다.(사진=공태영 인턴기자)


그 걱정은 다 기우였다. 차는 계곡 바로 옆에 자리한 ‘유르트(yurt, 유목민 천막)’에 우릴 내려줬는데 거기서 대낮의 만찬이 시작됐다. 애피타이저로 나온 빵과 차를 정신없이 먹는데 향긋한 고기 냄새와 함께 송어 구이와 튀김이 나왔다. 유르트 옆 계곡에서 갓 잡아 올린 송어는 두께도 상당했지만 고기의 질이 남달랐다. 평소에 생선을 즐겨먹지 않는 편인데도 고기가 싱싱하고 맛있다는 느낌이 충분히 느껴졌다. 송어 자체도 워낙 실해서 4명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었다.

슬슬 배가 차는 느낌이 드는데 갑자기 중앙아시아 대표 음식 중 하나인 ‘샤슬릭(Shashlik, 꼬치 구이)’이 또 나왔다. 길거리에서 팔던 샤슬릭에 비해 양고기 크기가 2~3배는 큰 샤슬릭은 비주얼부터가 군침을 흘리게 만들었다. 배부른 건 문제가 아니었다. 입 안 가득 샤슬릭을 채워넣고 씹으니 육즙이 터져나왔다. 이 집 생선요리만 잘하는 줄 알았더니 고기도 잘 굽네. 가난한 배낭여행자가 언제 또 이렇게 맛있는 음식을 맘껏 먹을까 싶어 남김없이 싹싹 샤슬릭을 해치웠다.

그렇게 중앙아시아 별미로 배를 가득 채우고 나서, 식사를 대접해주신 아저씨들과 함께 사진을 찍고 헤어졌다. 같은 한국인이란 이유만으로 이렇게 풍성한 대접을 베풀어준 아저씨들이 참 멋있었다. ‘우리도 저런 어른이 될 수 있을까?’ 대가 없는 친절에 마음이 부른 채로 다시금 발걸음을 옮겼다.

중앙아시아 느낌이 폴폴 나는 유르트에서 하룻밤을 잔다면 무슨 느낌일까. 그 호기심이 때문에 총악수로 갔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계곡의 주인은 별이 아닌 곰이었다

총악수 계곡에 간 목적 중 하나는 전통 천막인 유르트에서 자보는 것이었다. 전기도 없는 산 속에서 밤에 별도 보고, 계곡물 소리를 들으며 유르트에 누워 잠들 생각에 기대감이 상승했다.

아저씨들과 헤어지고 나서 총악수 트레킹의 목적지인 호수에 올라가봤는데, 호수보단 저수지 같은 모습에 실망만 하고 다시 내려왔다. 그날 머물 유르트에 도착하니 유르트 주인인 키르기스스탄 가족이 음식을 잔뜩 차려줬다. 거하게 먹은 점심으로 아직 배가 불렀지만 그래도 성의를 봐서 열심히 이것저것 입에 넣었다. 외국인이 신기했는지 대여섯 명의 아이들이 우리 주위에 둘러앉아 구경을 했다. 이런 산 속에서 지내는 애들은 얼마나 심심할까 싶어 애들을 데리고 천막 밖으로 나가서 놀았다. 말은 안 통해도 같이 공도 차고 술래잡기도 하면서 두세 시간을 열심히 놀아줬다.

우리가 열심히 놀아줬던 애들은 사실 우리가 불쌍해서 놀아준 천사들이었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해질녘이 되자 천막을 정리하고 잠자리를 준비해주길래 주인집 천막은 따로 있나보다 했는데 같이 놀았던 아이들이 우리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그러고는 온가족이 차를 타고 계곡 아래로 내려갔다. 사실 천막에서 잠 자는 건 외국인들뿐이고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아래쪽 마을에 집이 따로 있던 것이다(!) 딴에는 산속에 사는 애들과 열심히 놀아준 건데, 돌이켜보니 산에서 자는 외국인들이 심심할까봐 애들이 우리와 놀아준 거였다(!!) 충격적인 반전에 어안이 벙벙했는데 유르트 주인이 떠날 때 남겼던 말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숲에서 곰이 나올 수 있으니 밤에 절대 유르트 밖으로 나가지 마.” 곰!? 공기 좋고 계곡물 소리가 시원해서 사람 살기 좋은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사람 말고 곰도 살기 좋은 곳이었다. 여기선 밤에 별 구경은커녕 생명을 지키기도 불투명했다.

곰이 나올까봐 천막 문을 꽁꽁 닫아놓고 전기도, 전파도 없이 누워 있으니 할 게 없어서 일찍 잠들었다. 하지만 곱게 자진 못했다. 분명 두꺼운 이불을 여러 겹 덮었는데도 사방에서 덮치는 냉기를 막진 못했다. 낭만적으로 보이는 유르트는 사실 아무런 방한 장치가 없는 텐트였다. 오들오들 떨면서 자다 깨다를 반복하다가 해가 밝자마자 짐을 챙겨서 유르트를 떠났다. 그저 따뜻하고 싶어서 뛰다시피 하며 산을 내려갔다. 다행히 곰은 만나지 않았다. 총악수에서의 기묘한 1박2일은 그렇게 다급하게 끝나버렸다.

우리는 얼어죽지 않으려고 아침에 유르트를 뛰쳐나왔다. 다행히 곰은 없었다. (사진=공태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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