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이 사건은 최태원 회장이 김원홍 씨(최 회장형제 선물옵션투자관리인, 전 SK해운 고문)에게 보낼 투자금을 마련하고 기존 채무를 갚으려고 벌인 일이라 봤지만,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문용선)는 달랐다. 최 회장 동생인 최재원 수석부회장이 김원홍 씨와 공모해 최 부회장 개인투자금을 마련하려고 범행을 계획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27일 검찰에 범행 동기와 관련된 공소장 변경을 권고했다.
문용선 부장 판사는 핵심 공소 사실인 ▲최 회장 형제가 SK 계열사로 하여금 베넥스인베스트먼트 펀드에 출자하게 한 뒤 선지급하게 했고 ▲선지급 된 돈 중 450여 억 원을 횡령했다는 부분은 유지했지만, 지난해 3월 1심 공판 이후 새로운 시각으로 사건을 재구성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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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부장판사는 이례적으로 공소장 변경 내용을 읽었다. 피고인 최재원이 김원홍의 투자권유에 따라 최태원 명의 SK C&C 주식을 활용해 저축은행 등에서 개인 투자금을 조달하려다 상장을 앞둔 SK C&C의 보호예수로 무산됐고, 최재원은 2009년 9월 김원홍으로부터 투자 재개를 권유받고 김원홍과 함께 김준홍 전 베넥스 사장에게 500억 원 상당을 SK C&C 주식담보 없이 만들려 했다고 했다. 이후 김준홍은 최재원과 김원홍의 요구에 따라 2008년 10월 말 자금조달을 강구하고, 이 과정에서 김원홍이 피고인 최태원에게 2008년 말까지 계열사 돈으로 펀드를 만들어 선지급해 달라고 했으며, 이를 승낙한 최태원과 최재원의 지시에 따라 펀드 출자금 중 일부가 횡령됐다고 밝혔다.
문 부장 판사는 “등록금을 마련하려고 도둑질을 했든, 도박하려고 도둑질을 했든 마찬가지”라면서 “범죄의 동기가 달라진다 해서 유·무죄에 영향을 미치지 않으며, 사적인 이익을 위해 계열사 돈을 동원해 횡령한 만큼 양형에서도 달라지는 게 없지 않은가 한다”라고 말했다.
최 부회장, 김준홍 진술 정반대
그러나 이 같은 ‘범죄의 재구성’에 대해 최재원 수석부회장은 물론 최태원 회장도 다른 진술을 했다. 김준홍 전 대표 진술만 재판부와 같았다. 김 전 대표 역시 이 사건의 공동 피고인이다.
최태원 회장도 SK C&C 주식을 담보로 금융권에서 돈을 빌려 투자금을 마련하려던 아이디어는 동생이 아닌 김원홍에게 처음 들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김준홍 전 베넥스 사장은 2008년 4월 부회장님이 SK C&C 주식을 담보로 한 대출을 문의했으며, 회장님이 보증했지만, 돈을 쓰는 주체는 부회장이었다고 진술했다. 특히 김 전 사장은 2008년 10월 초 미국 출장 중에 부회장이 전화해서 귀국해 돈을 조달하라고 말했다고 증언했다.
재판부, 김준홍만 믿다
문 부장 판사는 최 부회장이 범행 공모를 전면 부인하자 “여기까지 하겠다”며 “더 하면 진술을 거부하는 것과 똑같은 의미”라고 비판했다.
하지만 김 전 베넥스 대표에게는 “당시에는 저축은행을 통한 대출이 최재원 투자금인지, 최태원 투자금인지 애매할 수 있지만, 사실은 엄격히 구분되는 것”이라며 “알 수 있는 것은 구분해 증언해야 한다”고 독려했다. 이후 김준홍 전 대표는 “장모 SK재무실장과 대화할 때에는 부회장님 자금으로 표현했다”며 “제 원칙은 부회장님 자금이고, 부회장님 투자로 알았다”고 말했다.
김준홍 진술도 허점 있어
하지만 김준홍 전 대표 진술에 허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김 전 대표는 450억 원 횡령이 발생한 이유로 최재원 부회장의 자금 필요성을 언급했지만, 정작 2008년 10월 초 귀국해선 김원홍만 만났을 뿐 최재원 부회장은 만나지 않았다. 그는 “부회장님은 자서가 필요할 때만 만나고 보통은 통화만 한다”고 말했지만, 재판부가 “지난번에는 최재원도 분당에 오기로 했다고 하지 않았나?”라고 묻자 “예, 그런데 오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김준홍 증언 확인할 김원홍은 증인신청 기각
재판부가 김준홍 전 대표 증언에만 전적인 신뢰를 보내자, 최태원 회장 변호인인 법무법인 지평지성의 이공현 변호사는 “대만 쪽에 확인하니 김원홍이 귀국하는 게 100% 확실하다”면서 “김준홍 증인(공동피고인)의 발언도 간접증거만 있고 유일한 직접 증거는 김원홍의 증언인 만큼 증인으로 채택해달라”고 요구했다. 최 회장은 김 씨가 자신을 속여 펀드를 만들게 하고 계열사들이 선입금 한 돈 중 450억 원을 빼돌렸다는 이유로 고소하기도 했다.
그러나 문 부장판사는 “물론 김원홍만 아는 것도 있겠지만, 김준홍의 증언은 중요한 부분에 직접증거로서의 성격이 있다”며 김원홍에 대한 증인신청을 기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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