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in]현대그룹 `단기차입금 1조` 특명은?

본입찰시 현금 보유잔고 늘려 M&A 가능성 제고
M&A 성사시 신용경색 대비한 단기 유동성 확보
M&A 실패시 단기 경영권 방어 자금 마련
  • 등록 2010-11-11 오전 9:30:00

    수정 2010-11-11 오후 1:54:51

마켓 인 | 이 기사는 11월 10일 16시 33분 프리미엄 Market & Company 정보서비스 `마켓 인`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이데일리 이태호 기자] `M&A 하게 잠시 1조원만 빌려주세요`

현대그룹이 현대건설 인수 본입찰을 한주 앞두고 약 1조원에 달하는 현금을 단기로 빌리고 있다. 분명한 용처를 밝히지 않은 이 대규모 자금의 상당 부분은 본입찰 전부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이후까지 약 두달 동안만 쓰일 예정이다.

크레딧시장 전문가들은 이 돈이 M&A 성사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높이기 위한 현대그룹의 승부수이자,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또는 탈락 직후 닥칠 수 있는 예상밖 유동성 부족에 대비하기 위한 총알로 해석했다.

▲ 현대그룹의 단기차입금 활용 유형
10일 금융감독원 공시자료에 따르면, 최근 공개된 현대상선(011200)의 단기차입금은 8712억, 현대엘리베이터(017800)는 1460억원이다. 올 상반기말까지만 해도 양사의 단기차입금은 각각 243억원과 840억원에 불과했다. 지난 4개월여 동안에만 9090억원이 불어났다.

특히 새로 발행된 5800억원의 CP 중 만기가 공개된(예탁 발행된) 3300억원은 모두 만기가 12월말까지로 약 두달에 불과하다.

그런데 CP 만기까지 정해진 돈의 사용처는 없다. 현대상선은 내년 2월 전까지 회사채 만기 도래 건이 없다. 상환우선주 1000만주를 내달 5일 갚아야 하지만, 원금 기준 1500억원에 불과하며, 이 기간 동안 M&A 이행보증금을 납부하더라도 인수금액(약 4조원 추정)의 5%에 해당하는 현금만 필요할 뿐이다. 이러한 비용은 하반기 이후 현대상선과 현대엘리베이터가 회사채발행으로 끌어모은 6700억원 만으로 감당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이와 관련, 시장 관계자들은 대규모 단기차입금이 띠고 있는 사명(使命)을 크게 세 가지로 추정했다. 하나는 M&A의 성공 가능성 제고, 다른 하나는 M&A 성공 직후의 유동성 확보, 마지막 하나는 M&A 실패 후의 경영권 방어다.

M&A 성공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단기차입금의 첫번째 역할은 `과시(show up)` 효과다. 풍부한 현금잔고를 보여주고 인수능력에 대한 의심을 조금이라도 약화시키기 위한 목적이다. 잔고증명에 찍히는 현금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기대 효과만 낼 수 있다면 수십억원의 이자 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길기모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본입찰 과정에서 보유 현금을 과시하려는 의도를 생각해볼 수 있다"면서 우리에게 이만큼의 캐시가 있다는 정도의 효과"라고 설명했다.

인수 성공 이후의 유동성 확보도 중요한 목적으로 지적됐다. 최근 금융회사들은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할 경우 옛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우건설을 인수했을 때와 같이 `소화불량`에 시달릴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 때문에 실제로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못 가져갈 것이라는 데 베팅하는 곳들도 많다. 크레딧시장 애널리스트와 매니저들의 이같은 우려는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을 인수했을 때 단기적으로 자금사정을 악화시킬 수 있다. 이 경우 미리 발행해둔 CP는 공시한 목적대로 `단기 유동성 확보` 임무를 다하게 될 전망이다.

마지막 역할은 인수실패에 대한 대비다. 만약 현대상선 지분 8.3%를 보유한 현대건설(000720) 인수 실패로 경영권 위협이 커진다면, 믿을 구석은 현금밖에 없다. 하지만 필요한 총알의 양 자체를 예측하기란 쉽지 않다. 인수 실패로 인한 재무부담 확대 가능성은 현대그룹도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다. (관련기사☞ 2010.07.28 13:50 "(진단!현대그룹)③`화약고` 현대건설 M&A")

현대상선은 최근 회사채발행 신고서에서 "현대건설이 보유하고 있는 당사 지분율을 고려할 때 현대건설 채권단의 지분 매각은 향후 현대그룹의 지분구조 변화에 영향을 줄 것으로 예상되고 있으며, 이와 관련하여 당사의 추가적인 재무부담 확대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 관련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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